작성일 : 19-12-19 10:52
대림살이 3주간 묵상
 글쓴이 : ui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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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지혜

 

 

[미타쿠예 오야신(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다코타족 인사)]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과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 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진정한 사람들에게는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위대한 신비', 그 영원한 존재에 대해 인디언들은 매우 분명하고 고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위대한 신비는 인디언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이었으며, 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만족의 기준이 그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위대한 신비에게 바치는 인디언들의 예배는 침묵과 홀로 있음 속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이기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신과의 만남이 이렇듯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모든 언어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홀로 있음 속에서 그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침묵으로 소통하는 일이야말로 인디언들의 종교적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함베데이라는 인디언 말로 어느 정도 그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문자 그대로 '신비한 체험',이라는 뜻이며, '금식 수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또는 '자신 안의 신을 체험하는 일'로 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얼굴 흰 정복자들은 우리 인디언을 가난하고 단순하다고 경멸해 왔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 종교가 재산축적과 사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을 잊은 모양이다. 모든 시대, 모든 종족의 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 인디언들 역시 소유를 탐하는 것을 하나의 덫으로 알았으며, 복잡한 사회가 안겨주는 많은 짐들을 쓸데없는 유혹과 고통의 근원이라 여기며 살아 왔다. 나아가 성공의 열매를 우리보다 행운이 덜 찾아온 형제자매들과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삶의 변함없는 규칙이었다.

 

인디언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은 죄악이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탐욕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밀집한 불결한 환경에서, 전염병보다 우리들이 더 무섭게 여긴 것은 다른 사람들과 너무 자주 접촉함으로서 어쩔 수 없이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었다. 자주 자연 속으로 들어가 혼자 지내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는 나날이 커져가는 강한 영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침묵과 과묵함을 배웠다. 그것들은 인디언의 성격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사냥꾼과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그것은 인내심과 자신을 다스리는 힘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디언의 삶 속에는 단 하나의 의무만이 있었다. 그것은 기도의 의무였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존재를 날마다 새롭게 인식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우리에게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은 종교적인 마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 점에서 인디언들은 탁월하다. 아름다운 것은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해선 안 되며, 오직 존경받고 찬양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신이었다. 우리는 자연을 완성된 아름다움으로 여기며,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인디언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하나의 종교적 행위였다. 그는 만물 속에서 영혼을 자가했으며, 그것들로부터 영적인 힘을 끌어낼 줄 알았다. 유한한 생을 사는 형제인 동물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사냥한 다음에는 동물의 시신을 편안히 누여 상징적인 깃털이나 물감으로 장식한 뒤,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물의 영혼은 자유를 얻고, 그 육신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바쳐질 수 있었다.

 

우리 인디언들은 겸허한 침묵을 최고의 덕목, 힘으로 여겼다. 그것을 완전한 평정의 표시로 여겼다. 침묵은 육체, 정신, 영혼의 절대적인 조화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의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나무 잎사귀 하나 떨리지 않고 물결 하나 일지 않듯이 그 영혼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것, 그 본성 속에 변함없이 삶의 이상적인 자세와 행동을 간직하는 것을 인디언은 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만일 침묵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답한다.

 

"침묵은 위대한 신비 그 자체다. 성스런 침묵은 신의 목소리이니까."

또 그대가 침묵의 열매인가?

"그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힘, 진정한 용기와

인내, 위엄, 그리고 존경심이다. 침묵은 인격의 받침돌이다"

 

 

[진 켈루체/윈투 족]

자연의 삶, 인디언의 삶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다른 위대한 가르침들과 내가 듣고 느끼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인디언인 요소는,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서는 살 수도 없다는 깨달음이다. 누구나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눈앞에 둔 상태로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얼굴 흰 사람들을 위한 인디언 기도문/ 호피족]

위대한 신비이시여, 얼굴 흰 사람들을 축복하소서.

그들은 당신의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인디언들을 없애려고 해왔습니다.

그들은 힘이 주어졌을 때만 안심합니다.

그들을 축복하소서. 그들에게 우리가 이해하는 평화를 보여 주소서.

겸허함을 가르치소서.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언젠가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파괴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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