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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9-01 16:26
춘천시립양로원 사도직 체험을 다녀와서(청원자 남혜원 라파엘라)
 글쓴이 : jrosa
조회 : 4,221  

  ‘춘천’하면 닭갈비와 막국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저였는데, 이제는 양로원에서의 추억이 먼저가 되었네요. 그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금 꺼내보려 합니다.

  

  춘천으로 떠나던 날, 촌스럽게도 저는 어김없이 멀미에 시달려, 버스를 탄 내내 그 좋은 풍경을 감상하지도 못하고 병든 닭 마냥 꾸벅꾸벅 졸아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비몽사몽으로 양로원에 도착해, 보이는 어르신들께 구부정하고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드렸지요. 사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낼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어르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내심 염려하고 있었답니다. 그리고서 송수녀님, 비안네수녀님, 피데스수녀님, 마들렌수녀님을 만나면서 분원에서 생활하시는 수녀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설레임과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과의 만남은 첫날 식사수발로 시작되었어요. 직원의 안내로 만나게 된 어르신은 점점 시력을 잃어 이제는 앞을 못 보는 할머니였는데요. 말은 별로 없으시고 요구사항이 많은 편이어서 봉사자들에게는 조금 까다로운 어르신인 것 같아 보였지만, 식사수발 때마다 자꾸만 그 어르신에게 가게 되는 것이, 어르신에게 어떤 묘한 매력이 있었나봅니다. 처음엔 한 숟가락씩 떠 넣어드리는 것이 단순한 일이고 반복적으로 계속 넣어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의 온도나 어르신이 씹어 삼키는 속도 그리고 어떤 반찬을 원하시는 지,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살피는 기쁨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하나, 그것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어르신들. 자꾸만 기억들을 잃어버리는 치매노인일지언정 그 순간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둘째 날 요양보호팀으로 투입되어, 어르신의 말벗이 되기 위해 먼저 어떤 방으로 인도를 받았지요. 그곳에서 만난 한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손도 쓰다듬고 머리도 매만져 드리면서 어르신들의 외로움, 쓸쓸함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치매가 심하시고 끊임없이 당신의 안타까운 사정을 이야기하시는 할머니였는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지만 당신이 살아온 인생이 참 괴로웠다는 말씀이신 것 같기에 저 또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어드렸더니 참 고맙다 하시더라고요. 또 기억하지 못하실 게 분명하지만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다는 것이 어르신에게 작게나마 기쁨이 된다면 나에게도 기쁨이기에... 저에게 다가오는 여러 감정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노인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부족했던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 안에 새로운 화두거리를 안겨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셋째 날에는 물리치료실에서 어르신들과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었어요. 조금씩 도와드리면서 함께 퍼즐을 맞추자 뿌듯해 하시는 어르신, 백내장 때문에 안보여 못하겠다면서 잘도 맞추시는 어르신, 너무 쉽다며 고개를 돌리시는 높은 지력의 어르신, ‘난 못해, 못해!’를 연신 외치시다가 내가 할머니와 같은 남씨 성을 가진 것을 아시고는 헤어진 가족을 상봉한 것 마냥 반가워하시던 어르신과 함께 모두 유쾌한 시간을 보냈지요.

  넷째 날 아침, 눈은 반쯤 감겨서는 젖은 빨래 같기도 하고 고무다리 같기도 한 팔다리를 힘겹게 흔들어대며 화장실로 향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래. 힘든 게로구나.’ 하고 있는데 불현듯 스쳐가는 얼굴들, 그 곳에서 활기차게 소임을 다하고 계신 수녀님들이 머릿속에 두둥 떠오르더라고요. 매일같이 삶으로 살아가시는 수녀님들 생각에 어느새 힘이 솟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세탁실로 향했지요. 빨래 개고 배달하는 단순작업인데, 그 곳에서만 수개월을 매일같이 봉사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어요. 작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에도 꾸준히 성실하게 일하는 그 청년의 모습이 숨어 일하는 작은 예수님처럼 여겨졌답니다.

  마지막 날, 주방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그동안 만났던 어르신들을 떠올려 보았어요. 처음에는 밝은 모습으로 맞이해주시던 어르신이 기운이 없어 누워만 계시는 것을 전날 보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고, 남씨 어르신도 보고 싶고, 자꾸만 집에 가야 한다 하시는 말 많은 어르신도 인사드리고 싶고, 입소한지 며칠 안 된 어르신에게 파이팅!이라고 외쳐드리고 싶고, 수원에서 왔냐며 반가워하시던 세류동 출신 어르신도, 우리 수녀님 결혼할 때 (서원으로 이해됨) 왔었다며 즐겁게 이야기하시던 어르신도, 모두 뵙고 가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했으나, 역시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 분들과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어야 했지요.

  

  되돌아보니 춘천양로원은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했고 감동하게 했어요. 먼저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는 어르신들의 밝은 모습은 지금도 이따금씩 떠오르곤 해요.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고 “사랑해요!”하며 하트를 날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꾸미지 않은 당신들의 행복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어르신을 대하는 직원들도 그저 직업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사람의 향기를 뿜고 있는 듯 했고요. 매일같이 구석구석의 건물청소로 일과가 시작되는 모습 덕택에 저도 함께 활기찬 하루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쾌적한 환경을 위해 힘쓰시고 아침마다 기분 좋은 향기를 퍼뜨려주시는 그 센스와 배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무엇보다 우리 수녀님들의 열정적인 삶 안에서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이루어짐을 배울 수 있었지요. 평가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지청원소를 보살펴주신 수녀님들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 전합니다. 또한 갑작스런 방문에도 자세하게 라운딩 해주시고, 맛깔스런 닭갈비 요리로 환영해 주신 장애인복지관 노엘수녀님, 한인자수녀님, 요셉피나수녀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소중한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도록 마련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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