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자이신 빌리암 폰 케틀러 주교님과 초대원장이신 마리 라 로쉬 수녀님과,
우리 수녀님들 말씀과 체험을 나누는 곳입니다.
 
작성일 : 10-07-17 11:00
[독일 국제 모임] 제비뽑기에 당첨된 수녀들의 행복 [2]
 글쓴이 : homepi
조회 : 3,755  

[독일 국제 모임]  
     
                               제비뽑기에 당첨된 수녀들의 행복



         
                                                                            글: 김 경숙 글라라 수녀


 

 마더 마리의 묘지 앞에 서 있자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묘 앞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놀랐고, 섭리의 역사에 놀랐다. 1855년에 시작된 이웃을 위한 사도직이 2010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더 마리의 뒤를 이어 행해 온 각국의 우리 회 수녀님들의 수많은 사도직의 열매를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다. 먼 독일에서 시작된 씨앗이 아시아의 한국에 뿌려져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하느님의 손길이 새삼 경이로웠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섭리의 딸이 되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음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 수녀회의 역사와 정신을 말해주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의 변천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보관해둔 문서고였다. 그곳에는 주교님이 로마에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카푸친 수도원에서 머물다 돌아가실 때 주교님이 머무시던 방의 침대, 가구들이 수녀원으로 그대로 옮겨와 보관되어 있었다. 초창기의 자료에서 지금에 이르기 까지 체계적으로 잘 정리정돈 되어 있는 문서고를 보면서 수녀님들의 역사와 자료에 대한 정성과 눈으로 확인했고, 하나 하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라는 감탄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마더 마리 드 라 로쉬에 관한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창설자인 케틀러 주교님을 만나는 여정을 떠났다. 독일에서 주교님을 처음 만난 곳은 마인츠 대성당 안이었다. 눈이 크게 떠 지고,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 그 성당의 웅장함에 취해 있을 무렵 우리 옆에 주교님이 계셨다. 주교님의 묘지를 처음 대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먹먹했다.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래서 목이 타 들어가던 ‘아가서의 고백’처럼 주교님을 만나는 순간 “주교님!~라는 말외에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큰절을 몇 번을 올려도 부족할 것 같은 주교님과의 첫만남은 “기쁨이었고, 감동이었다.주교님이 시작한 노동자들을 위한 관심이 지금까지 매년 713일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로 거행되고 지금까지도 주교님에 대한 존경의 손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하니 내가 천주섭리수녀회의 회원인 것에 대한 자긍심은 성당을 뚫고 밖으로 나갈 지경이었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립프라우엔하이트 숲 속의 작은 성당을 방문했다. 이 성당은 1868년 주교님께서 축성하신 곳이고, 이곳에서 노동을 해야 만 했던 여성과 어린이들, 거기에 의료혜택조차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임금과 인권존중을 위해 강론하셨으며, 그 성당은 아름다운 통고의 어머니상이 모셔져 있는 순례지였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자들이 겪어내야 했던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 세상을 향해 말한 주교는 케틀러 주교님이 처음이셨고, 그런 의미에서 숲속의 작은 성당은 가톨릭 사회교리 탄생의 요람지이고 그 후로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담당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니 주교님의 정의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대단하셨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또 한 곳, 주교님이 본당신부로 부임해 계셨던 홉스텐 성당을 방문했다. 주교님은 지역주민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인 이곳 본당에서 지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 애쓰셨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의 노동금지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셨고, 가난한 이웃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시려 애쓰신 곳이기도 하다.

 그곳 본당신부님이 우리들에게 전해주신 주교님에 관한 일화중의 하나는. 주교님께 마인츠 주교가 되면 어떻겠냐?는 상부의 제의를 받았을 때, 달갑지 않으신 주교님은 교황님께 ‘본인은 라틴어로 줄줄 편지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주교가 될 수 없으니 주교후보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서한을 보냈는데, 그 서한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주교님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우리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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