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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19 19:43
[독후감] 마리 드라 로쉬 다시 읽기
 글쓴이 : homepi
조회 : 3,543  

 자료출처: '창설자의 정신을 따라서' 에서 발췌



마리 드 라 로쉬(Marie de la Roche) 다시 읽기:

  반전(反轉)을 통해 섭리를 완성시킨 마리아 수녀의 삶


김 은순 로사 수녀  


몇 해 전, 'The Sixth Sense (제 육감, 직감)' 이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의 한 사람이었던 어린 소년은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였는데, 처음에는 자신이 죽은 이들(귀신들)을 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자신의 초능력을 십분 발휘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 소년이 한 아동 심리학자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도움을 통하여(counseling)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죽은 이들의 한을 풀어 주는 일들) 해결해 나가게 된다.  따라서 관객인 우리들은 이 소년을 통해 풀어나가는 죽은 이들의 한 맺힌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뒤에 기다리고 있었던, 상상을 초월한 '반전(反轉)'의 결말에 부딪치면서, 다시 한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실은 그 아동 심리 학자 역시 죽은 이였기 때문에, 이 소년의 눈에 보인 것이고,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영화 끝 무렵 어이없어했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냄으로써, 이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 감독의 예상이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그분(하느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그분을 길을 걷는다는 것은(산다는 것은), 우리 삶 곳곳에도 또한 이 '반전의 미학'이 무수히 숨어있음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며, 체험의 길이라고 여긴다.   기대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선택하거나, 또는 사건들을 통해서, '하느님 섭리의 개입'은 당신의 계획대로 인간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철저히 그러나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이루어가고 계심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인간인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고 세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해도, 사실상 모든 일들의 결과는 하느님께서 계획 하신 대로 뜻밖의 상황과 모습으로도 실현 될 수 있음을 결국은 깨닫고 수용하는 것이라 여긴다.

마리아 드 라 로쉬 원장 수녀의 생애, 역시 예기치 못한 반전을 통해 완성된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열심한 루터교 신자이며, 여 남작이었던 스테파니 프리데리카 아말리아는 1851년 6월 14일에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후일 천주섭리 수녀회의 초대 원장이 될 마리아 수녀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게 된다.  이로써 희미하고 불확실하게 움직여지던 하느님 섭리가 그녀의 생애에 직접 개입하시게 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 뀉총명했고 섬세한 성격과 높은 교양, 깊은 신앙심과 따뜻한 인정을 가진 사람[으로]꽤 탁월한 언어 재능 마리 드 라 로쉬(Marie de la Roche), M. Tharsilla Kramer CDP, 김화영 역, 18쪽 "을 지녔으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뀉 친절하고 따뜻하고 이해심 깊고 소박하고 부드러운 성품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이해심 앞의 책, 60쪽"을 가진 그녀의 면모를 자세하게 언급함으로써, 마리아 수녀의 품성과 인격이 새로 창설된 수도 공동체의 초대 원장으로서, 공동체 수녀들을 깊이 이해하고 지도하며, 수도회에 직면된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는데 손색이 없는 적임자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전반부에 도입된 그녀의 유아세례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는, 이와 같은 그녀의 온화한 품성과 상반된 "[그녀의]수호성인인 성 스테파노처럼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초자연적이고 영웅적 사랑과 용기 앞의 책, 17쪽"를 간직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모습을 또한 지니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온유하면서도 내면으로 강인했던 초대 원장 마리아 수녀의 이런 모습은, 신사임당을 훌륭한 어머니와 여인(아내)들의 귀감으로 삼는 우리 유교의 문화에 익숙한 나(우리)에게 참으로 매력적이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마리아 수녀와 우리 역사 속의 여성들 모두는 인내와 희생, 그리고 지혜의 삶을 산 이들이었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이를 만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같다.

오랜 전, 수련소에서 수도회 역사와 마리아 초대 원장 수녀에 대해 처음으로 배울 때가 기억이 난다.  사실 내가 수녀원에 입회 할 때만해도 외국인을 직접 접하는 기회는 극히 드문 시절이었다.  물론 미국관구 소속의 빅토린 수녀님과 앤 말틴 수녀님과 함께 생활했던 짧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았던 것도 아니라서 외국인에 대한 이질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처럼, 다른 문화 속에 존재하는 먼 이국의 나라, 독일에서 시작된 국제 수도회라는 자체가 부담스러워 이질감(異質感)이 먼저 앞선 내게, 그녀의 부드럽고 단아한 사진과 인내와 희생,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기록된 그녀의 생애는, 역시 인고와 희생으로 대변 할 수 있었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익숙한 옛이야기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내 주위의 많은 한국의 여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내 삶에 들어와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하여튼 돌이켜 본건데, 독일이라는 낯선 이국땅에서 창설된 수녀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에게 익숙한 마리아 원장 수녀만의 고유한 동양적인 여성스러움과 섬세함,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들과 같은 헌신적인 사랑과 용기의 모습이, 머나먼 한국 땅의 우리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친근하게 사용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섭리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까지 이렇게 쉽고도 기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신 섭리의 손길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의 나(우리)와 19세기의 마리아 수녀가 세기를 거슬러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은 동. 서양의 문화와 종교이념을 넘어, 단지 여성의 '미덕'이라 일컬을 수 있는 '인내심과 희생'이라는 익숙한 연대감을 통해서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거듭되는 하느님의 개입은, 마치 영화감독이 되신 하느님께서

그녀의 삶을 평범하시지만 격정적으로, 평화를 허락하시지만,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한편의 영화처럼 끌어가시는 듯 하다.    "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마태오 복음 13:44)"것처럼, 귀족으로서의 평안하고 아늑한 삶을 영위하던 한 젊은 귀족처녀가 새로운 종교, 가톨릭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가족과 주어진 개인의 안위를 과감히 포기하게 된다.  하느님의 섭리가 마리아 수녀의 생애에 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시는 순간이다.  물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는 당연히 치러야 하는, 그렇지만 한 개인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어려움의 순간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가족과의 갈등과 이별,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된 수도생활에서 비롯된 공동체 삶 안에서 감수해야만 했던 크고 작은 시련들이다.   하느님의 존재가 더욱 절실히 필요했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 수녀는 그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을 통해 움트고 있는 새 자유와 영원한 생명의 기운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힘을 또한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죽어야만 살고, 버려야만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하느님만의 방식인 '역전(반전)의 미학'은 마리아 수녀의 생애를 통해서 실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안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실현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반전(도전과 시험)'은 마리아 수녀의 일생을 통해 계속되었고, 그녀의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까지도 계속되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참을성 있고 자신을 온전히 이웃에게 내어 준 사람4 마리 드 라 로쉬(Marie de la Roche), M. Tharsilla Kramer CDP, 김화영 역, 118쪽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종 전 그녀는 "아픈 몸을 간신히 가누며 열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음식을 가지러 부엌으로 앞의 책, 117쪽" 갔을 때, 후배수녀로부터 거친 떠밀림과 함께 이유 없는 호통을 들어야 하는 수모를 겪은 지 얼마 후, 짧지만 완덕(完德)에로의 열망이 가득했던 수도자로서의 일생을 마치게 된다.  1857년 8월 1일이었다.   내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마리아 수녀가 후배 수녀로부터 받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모욕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겸손함과 온유함을 더 강하게 부각 시켜 준 '하느님의 반전이 절정을 이룬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짧은 수도생활을 통해 드러나지 못하였고, 다른 이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그녀의 삶은 이런 모욕을 통해 더욱 고귀하게 드높여진 것이다.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이 깊다고 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 십자가상의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셨던 하느님의 침묵을, 마리아 수녀 역시 병고의 순간에, 수도 공동체와 다른 이들로부터의 냉대와 모욕의 시간 안에서 체험하였을 것이다.  당신의 원하시는 바를, 당신의 때에 이루시고자, 마리아 수녀에게 허락하셨어야만 했던 그분의 침묵과 공허의 시간들이 천주섭리 수녀회의 초석이 된 그녀에게 당연히 거쳐야 할 필연적인 시련이었으리라.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셔야만 했던 하느님의 '신적인 필연(Divine necessary)'이 성취되기 위해서, 가장 그 시대적이고 현실적이었던 이들을 통해 역사하신 것처럼, 어쩌면 그 분의 섭리가 세상에 드러나기 위해 그 시대의 징표를 가장 예리하게 읽을 수 있었던 윌리암 본 케틀러 주교의 탁월함과 열정, 그리고 타고난 헌신적인 용기와 사랑으로 뭉친 여인, 마리아 드 라 로쉬 원장수녀의 인내와 희생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천주 섭리 수녀회가 세상 안에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모든 그녀의 헌신과 시련, 용기의 생애는,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백오십여년이라는 시간의 뒤안길을 지난 지금은 독일, 미국, 한국, 페루 등의 여러 나라에서 많은 천주 섭리회 수녀들이 그녀의 생애를 통한 겸허한 신앙과 용기와 미덕을 배우며 따르고 있다.  참으로 죽어야만 살고, 버려야만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역전(반전)의 삶을 철저하게 살다 가신 마리아 수녀의 단순. 소박하고 온유한 삶은, 그녀의 후배 수녀들인, 우리 모두에게 이어져 지금도 이 세상 속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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