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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21 16:13
섭리와 십자가 - 정리— 김영미 마리아 수녀
 글쓴이 : homepi
조회 : 3,917  




섭리와
십자가

 

정리— 김영미 마리아 수녀 

 

 

오늘날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자랑스런 상징이지만, 과거 십자가는 죄수에게나 십자가 형을 내린 사람에게나, 아니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끈 도구가 악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악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섭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살면서 겪는 고통과 씨름하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가?

 

예수님은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던 때부터 골고타에서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길 때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을 피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섭리를 피조물과 맺는 하느님의 사랑에 찬 관계로 피조물에게 선을 드높이기 위해 상반되는 것도 감당하도록 초대하고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섭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십자가를 진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부활한 삶도 경이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것이었다. 먹고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만져보게 하였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움직인다.

 

하느님이 만든 우주 - 같은 모습을 영원히 유지하는 유한한 피조물은 없고, 매 순간의 변화는 그대로 하나의 작은 죽음과 부활이다. 움직이고, 영양을 주고 받는 일은 늘 새로운 주기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선익만 추구하게 되면 피조물은 역시 자신의 선익을 추구하는 다른 피조물과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을 악이라고 일컬을 수 있으니, 그 결과로 불편을 초래할 뿐 아니라 생명과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주에서 본래 선한 의향의 부산물로 불의가 이루어지고 생명을 잃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우주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다.

 

우주 속의 인간 - 악이 현존할 때라도 모든 것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은혜롭게도 우리는 계속 구속되어 온 것이다. 마리아는 이 진리를 모범으로 보여준다. 하느님과의 일치와 화해의 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편에 있다.

 

인간이 누리는 생명 우리 스스로에게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신적 원천에서 나온 생명이기에 값지고 강한 것이다.

 

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여전히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적 보살핌을 긍정할 수 있는가? 악을 완전히 소멸할 수는 없지만 악이 선의 발전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극복할 수는 있다. 당연히 악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악도 영원히 신비이다. 악은 선의 부재 이상이다. 자연 악은 모든 피조물이 본질적으로 유한하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것들이다. 윤리 악의 원인은 인간의 선택으로 거슬러 갈 수 있다. 십자가형을 초래한 죄에는 여러 선택이 포함된다. 이러한 선택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빚은 상황을 예수님은 피할 수 없고, 악이 승리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에 침묵하고 있었다.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는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유발한다. 하나는 악을 피하거나 완화하는 방법을 찾거나 고안하는 것이다. (카나의 마리아)  또 다른 응답은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다하고 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이상 식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기꺼이 침묵하는 것이다. 죽음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 엄청난 자유와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파스카 신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하느님의 섭리적 보살핌을 매우 강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지상과 천국 사이에서 무력한 상태로, 예수님은 잔인한 죽음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기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한다. 십자가는 파스카 신비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죽음을 통해 생명이 나온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죽음을 통해 더 충만한 존재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님이 부활한 몸에 상처를 그대로 지니듯이 우리도 상처를 통해 죽음보다는 생명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상처를 전혀 견뎌내지 못했을 때보다 상처를 지닌 채 더 아름다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수치와 당혹스러움의 대상에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참아 받을 뿐 아니라 기꺼이 극단의 희생을 선택한 분의 강한 사랑에 대한 영광스러운 상징이 되었다. 하느님이자 인간인 분의 목숨이 십자가 위에서 사라졌지만, 십자가의 가로대는 약함이 아니라 진정한 힘과 권위의 표징이다. 십자가는 또한 하느님이 특별히 인간에게 부여하기로 한 자유라는 큰 선물을 신성이 어느 정도까지 존중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하느님의 사랑과 지배하는 대신 복원력을 지님으로써 상반되는 것을 동화시키고 선과 악처럼 대가 되는 것을 긴장 가운데 통합하는 하느님의 힘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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