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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6 19:59
초대 원장 마리 수녀님 축일 전 기도 - 제 7일
 글쓴이 : home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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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날 (7월 29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날에 강복하시고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계시어,

여러분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영웅적이고 헌신적인 이 여종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

 노이슈타트는 열병이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었다. 수녀와 아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어나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마더마리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음식을 들고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다니며 환자들을 위로하였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잘 보살펴야 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더마리는 따뜻하고 자상한 간호사이며 어머니였다. 날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하루 24시간의 간호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혼자 감당해 내던 마더마리의 지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7월 마지막 주에 수녀님이 쓰러지고 말았다. 수녀님은 기진맥진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성당으로 향했다. 조금 뒤 한 수녀가 제단 앞에 엎드려 있는 수녀님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마더마리와 그의 마음속에 현존하시는 자비하신 신랑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친절하고 인자한 마더마리의 간호 덕분에 모든 수녀와 고아들이 열병을 이기고 무사히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마더마리를 침실로 데려온 수녀들은 그가 장티푸스에 감염된 것을 알았다. 수녀님은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그 열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마리아 원장이 수녀들과 아이들의 생명을 건지고자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내어 드렸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마더마리는 열병의 병마가 휩쓸고 간 성 마리아 고아원의 유일한 희생자였다. 그는 한 점의 반항이나 비탄도 하지 않고 45세의 일생을 마치고 자신의 귀중한 영혼을 자비하신 하느님 섭리에 조용히 되돌려 드렸다. 때는 1857년 8월 1일, 수도생활 6년째, 수도서원 3년째 되는 해였다. 비록 짧은 수도생활을 하였지만 그 영혼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기에 수녀님은 완덕의 긴 여정을 완성하였다.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겸손한 신부의 죽음은 주님의 눈에 소중한 것이었다. 주님의 얼굴을 마주 대고 뵈올 때 그는 차고 넘치는 풍성한 상을 받을 것이었다. 마더마리는 우리 공동체에서 가장 먼저 영원한 생명에 들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고, 우리 가운데에서 처음으로 “어린양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가는” 동정녀들의 반열에 들어,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사람만이 부를 자격이 있는 노래를 부른 사람이었다.


  마더마리의 사랑과 너그러운 정신은 이 세상에서 그를 따르는 천주 섭리 수녀회 수녀들에 의하여 그가 산 45년의 생애보다 더 오래 지속 될 것이며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수녀님의 희생정신은 1876년 ‘문화 투쟁’으로 독일 학교에서 추방당하여 북 남미 대륙으로 피신해 간  독일 수녀들로 이어졌다. 하느님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마더마리의 전인적 사랑의 정신을 물려받은 수녀들은 1932년 푸에르토리코 진출을 시작으로 1961년에는 페루의 안데스산맥지역에, 그리고 1966년에는 한국에 진출하였다.

  휜튼에 여섯 개의 방이 있는 작은 건물에서 출범한 이 작은 수도 공동체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 하겠다’는 마더마리의 꿈처럼 이제 천주 섭리 수녀회 모든 회원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 주님을 찬미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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