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자이신 빌리암 폰 케틀러 주교님과 초대원장이신 마리 라 로쉬 수녀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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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6 20:01
초대원장 마리 수녀님 축일 전 기도 - 제 9일
 글쓴이 : home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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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날 (7월 31일)


“저의 가슴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더마리의 인격과 성덕


사랑하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은 흔히 ‘어머니의 일생은 사랑의 일생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는 바로 마더마리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녀님의 삶은 ‘희생의 삶이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희생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로 개종한 것은 수녀님에게 커다란 희생이 아닐 수 없었다. 개신교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가족과 루터교 신자 친지들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가 된 수녀님은 즐겁고 슬픈 추억이 어려 있는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의 예배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개종을 결심한 수녀님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반대를 예상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그의 신념과 시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개종을 알게 된 일부 가족과 친척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녀님을 냉대하고 가족 관계를 끊어 버렸다.

그러한 소외는 끝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다정다감한 사람에게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 일이 있을까?

  수녀님은 수도원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틀러 주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소망을 접고 새로 설립한 수도 공동체를 이끌 책임을 받아들였다. 이 공동체는 오랫동안 극심한 궁핍 속에 살았다. 라 로쉬 슈타르켄펠스 여남작이었던 그는 공동체에서 가장 힘들고 낮은 일을 도맡아 했다.

  수녀님의 희생적인 삶은 수녀님을 짓누르거나 우울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수도원을 이끌어 갔으며 고아들을 돌보며 하느님께 봉사할 수 있는 고아원을 세웠다.

아직도 많은 희생이 수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더마리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로 존경하던 신부에게서 오해와 오판을 받아야 했다. 그 신부는 주교에게 마더마리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어 그를 모원의 원장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마더마리는 자기보다 20살이나 어린 수녀에게 원장 자리를 내어 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새 원장 수녀에게 축복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편지에서 지난 몇 년이 마치 악몽처럼 고통스러웠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한 편지 내용은 당시의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음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모든 일을 겸손과 순명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알아보시려고 더 큰 희생을 요구하셨다.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

마더마리의 나이 45세, 수녀님은 노이슈타트에 학교와 고아원을 세웠다. 수녀님은 수녀들에게뿐 아니라 가장 어린 고아에게까지 부드럽고 다정한 어머니였다. 1857년 여름 어느 날, 불청객이 노이슈타트를 찾아왔다. 장티푸스가 마더마리를 제외한 모든 수녀와 고아들을 덮쳤던 것이다. 수녀님은 헌신적이고 친절한 간호사가 되어 하루 24시간을 환자 돌보는 일로 보냈다. 수녀들과 아이들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이번에는 열병이 수녀님에게 옮겨 왔다. 그리하여 수녀님은 열병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수녀님은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묵묵히 모든 고통을 감내하였다. 1857년 8월 1일,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눈물과 시련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당신 딸을 고통에서 구원하시러 찾아오셨다.

마더마리가 집안 환자들을 살리고자 자신을 희생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듯이, 수녀님이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고자 바친 희생과 과로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마더마리는 우리 공동체에서 하느님 섭리의 품안에 고이 쉬는 첫 번째 사람으로서 천상 평화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마더마리의 많은 덕행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덕행을 ‘희생’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녀님의 전 생애는 제단 위에 봉헌된 희생제물 이었기 때문이다.

  케틀러 주교는 마더마리의 그러한 희생의 삶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다. 수녀님의 묘지를 방문한 주교는 “마리아 수녀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하고 조용히 말하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수녀들에게 덧붙였다. “나는 수녀님에게 참으로 많은 희생을 요구했지요. 그러나 수녀님은 모든 희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인자하신 수녀님께서 천주섭리 수녀회의 각 수녀를 이끌어 주시고 “하느님 뜻의 제단에 자기를 희생하라.”는 마더마리의 심오한 교훈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


○ 주님을 찬미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카를 필립 프렐러 작, ⎾천주섭리 수녀회, 마인츠 수녀들의 백년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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