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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10 17:52
[사도직 이야기] 내 삶의 등대, 섭리 가정
 글쓴이 : homepi
조회 : 5,141  

자료출처: 수녀회 카페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주] 섭리가정은 만성 정신 질환자들의 사회 복귀 거주 시설로서, 이들의 재활과 만성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지역사회 주민이나 회원들의 긍정적인 변형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있는 시설입니다.

                                                          

 

내 삶의 등대, 섭리가정

퇴소 회원  이 지혜

20대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보통 청소년기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면 어쩌면 저에게 있어서는 2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서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몸이 원래 약했던 엄마의 병세가 점점 심하게 악화되어 갔습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휴학을 하고,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엄마의 병간호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도 호전되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엄마는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전의 한 작은 병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엄마 곁에서 병간호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힘을 다해 간호를 했지만, 결국 엄마는 대전에 온지 4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엄마를 많이 따르고 의지했던 터라 상실감이 너무도 컸습니다. 그리고 좀 더 엄마에게 정성을 기울이지 못했던 점,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것들,,,수많은 생각이 들어 죄책감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쯤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고, 텅 빈 것만 같은 허전함에 밤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신앙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 지내려고 했지만, 그 무엇도 나의 허전함과 슬픔을 달래주지는 못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어 재혼을 하셨고, 그것은 저에게 또 하나의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가족도 모두 다 날 떠나고 이 세상에는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26살에 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갔지만, 일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몇 달 하다가 그만두고, 또 그만두고.....그러면서 사회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7살이 되면서 얼마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다시 우울감과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저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럴수록 더욱 우울하고, 점점 더 저의 마음을 조절할 수 없이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한 목사님을 알게 되었는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셔서 그때 처음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망상과 우울감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껴서 병원에서 처방한대로 약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갈수록 힘들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도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힘에 겹기 시작하였을 때, 목사님께서는 병원에 잠시 입원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셨습니다.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기가 너무나 끔찍하게만 느껴졌던 병원생활...늘 똑같은 시간에 그저 밥 먹고, 잠만 자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병원생활은 내가 살아있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한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사회복귀시설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전에 몇 군데가 있는데, 그 중에 섭리가정이 괜찮다고 해서 그 뒤 아빠와 함께 섭리가정을 방문하여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라는 생각과, 단체생활을 하면 불편할 것 같은 점, 그리고 병원과 별다를 것이 없을 거란 생각에 주저하다가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의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만 끊임없이 들어 혼자서 퇴원한지 한 달 만에 저 스스로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면서 점점 삶에 대한 의욕도, 가치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섭리가정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퇴원과 동시에 섭리가정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도와주셨고, 조금씩 섭리가정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여서 환경도 깨끗하고, 시설이지만 가정집 같은 아늑함을 느껴서 처음부터 적응하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저 때문에 불안해하셨던 아빠도 점점 안심하시게 되었고, 한 달에 한번 있는 가족모임에 바쁜 일이 있어도 제쳐두고 꼭 오시는 아빠를 보면서 저도 안정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섭리가정 회원들과 같이 식사를 직접 만들어서 먹고, 함께 영화도 보러가고, 쇼핑도 하고, 뜨개질, 퀼트, 십자수 등을 하면서 다시금 나 자신이 살아있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밖에 밤 줍기, 채소 가꾸기, 오페라 감상, 등산 등의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병원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생활이었습니다.

물론 섭리가정의 생활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와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것과 규칙적인 생활이 좀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로 섭리가정의 생활에 만족하고, 회원들과도 잘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또 어려울 때는 선생님들이 상담도 해 주시고, 힘을 넣어 주시면서 삶에 대한 용기를 갖게 하셨습니다.

3개월 동안 섭리가정에서의 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직업재활의 단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의 제과점에서 일해 보는 것이 어떤지 선생님의 소개와 권유로 그곳에서 하루에 4시간씩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을 하지 못한지 오래되어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용기를 내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속도가 조금 느리긴 했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배우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제과점 일을 통해 일을 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금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이 들게 되었습니다. 3개월 정도 제과점에서 일을 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제과점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한 단계를 밟은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다시금 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선생님의 소개로 선생님께서 잘 아시는 꽃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꽃집에서 한번 일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참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고정적인 시간에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어서 다른 일을 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생님과 원장 수녀님의 제안으로 장애등록을 하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셔서 부모님도 동의를 하셨고, 장애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장애인 고용센터도 찾아가 상담을 하고, 이력서를 내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취했습니다. 정신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취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침 선병원에서 사무보조 직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고용센터로부터 듣게 되었고, 면접을 봤지만, 취업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거리도 멀고, 업무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이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다시금 롯데백화점 여직원 락카실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는지 고용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그래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채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며칠 만에 2009년 7월 1일부터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무슨 장애로 들어왔는지 궁금해 해서 말은 하지 못하고,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정신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지, 그만큼 사회에서 편견이 정말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저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한동안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속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일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는데, 백화점이란 특성상 여직원이 많아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면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선생님들은 제가 지속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면 저 또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참고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6개월 정도 일을 하고 있을 때, 백화점 인사과에서는 검품장 사무실에서 일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고, 저도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에 검품장 사무실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009년 12월부터 그곳에서 일을 하였고, 2011년 7월인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 중에 가장 오랫동안 일을 했고, 그동안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섭리가정 선생님들의 조언과 또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언니의 도움으로 이겨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직장 일을 끝내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섭리가정의 회원들이 늘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나를 위해 식사를 마련해 주는 등의 배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직장을 갖게 되면서 한 가지, 제 삶 가운데 큰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2003년부터 교회 를 통해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 집이 롯데백화점 근처라서 일이 끝나면 저를 섭리가정까지 차로 시간이 될 때마다 태워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저에게 정성껏 대하는 태도에 조금씩 호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롯데백화점에서 섭리가정까지 꽤 먼 거리인데도, 매일 차량운행을 해주고, 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고,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이 사람이 진심어린 고백을 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알게 되었을 때, 제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정서적으로 좀 무감각해져서 눈물이 마른 줄만 알았는데, 마음이 울컥하고, 설레는 것이 죽어있던 저의 마음이 다시 소생하는 것만 같아 저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구나...나도 보통의 여자구나...하는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나니, 이 사람에 대한 저의 마음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내가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도 저에 대한 마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섭리가정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랑도 조금씩 키워갔습니다. 단체생활을 하고, 섭리가정에 규칙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선생님들도 이해를 하시고, 시간이 날 때는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이해해주고, 변함없이 옆에서 있어줄 사람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결국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걸어갈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2010년 3월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섭리가정의 선생님들도 오셔서 축하해 주시고, 형부가 결혼 선물로 신혼여행을 보내 주셔서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도 다녀오게 되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초라하지만, 함께 신혼집도 꾸미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늘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섭리가정에서 나오게 되었고, 섭리가정을 나온 지도 이제 1년 반이 되어갑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뒤돌아 볼 때, 그런 사회복귀시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섭리가정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늘 자신 없고, 의욕 없는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 너무나도 막막했을 때, 섭리가정은 제게 캄캄한 밤에 빛을 비추는 등대와 같이 길을 알려준 곳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가족 모임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서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들게 하고, 나를 지지해주면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아빠가 한 달에 한 번씩 가족 모임 할 때 마다 꼭 오셨는데, 멀리에서 오시는 것이 감사하고, 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저 또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호자와 회원들은 선생님들과 면담을 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고,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음으로 정신장애에 대해 배우며, 잘못된 편견들은 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방문을 통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짐으로써 더욱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늘 이겨내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인내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힘들었을 때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언제까지 폐쇄된 병원에서 고독하게 지내야할지,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아야할지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하고 원망만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고, 힘든 모습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보통 사람들처럼 직장 생활도 하고, 가정 생활도 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섭리가정의 힘이 큽니다. 그래서 섭리가정과 같은 사회복귀시설의 역할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섭리가정에서 회원들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나와 같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금은 섭리가정에서 생활하지는 않지만, 고민이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끔 방문을 합니다. 그때마다 선생님들과 원장 수녀님은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조언을 해 주시는 등 도움을 주십니다. 앞으로도 제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두드릴 수 있는 문이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어려워도 길이 있다는 것, 인내하면 길이 열리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하면서 지낼 때, 앞길을 열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적절한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감사합니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리고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언가 큰 것을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램입니다. 지금까지 섭리가정에서 지낸 동안 옆에서 도와주신 선생님들과 회원들, 그곳에 있게 해 주신 원장 수녀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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