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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06 10:52
봉헌생활의 근본적인 본질과 중요성 [1]
 글쓴이 : homepi
조회 : 7,715  

봉헌생활의 근본적인 본질과 중요성

(UISG 회지 2011 146호에서)

 

샌드라 슈나이더즈 수녀 IHM

 

I. 들어가며

 

주어진 주제를 보고 다소 당황스러웠다. 어떤 대상의 근본적인 본질과 중요성 15분 이내에 어떻게 말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교회법에 따른 봉헌생활에는 수도회와 상당 수의 다른 생활 형태도 포함된다. 그래서 루카 복음 16 1-9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칭찬한 약은 종의 모범을 따라, 얼른 장부를 들고 자리에 앉아 내가 한 숙고에 두 가지 제한 사항을 매김으로써 나의 채무를 지워나갔다.

첫째, 메리 마허(Mary Maher)가 한대로 사도적 수도생활에 대한 숙고로 제한하고, 둘째, “근본적인 본질이란 불변하는 특정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구성되는 플라톤적 본질이 아니라 수도생활이 다양한 역사 환경 속에서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거나 취해야 할지라도 수도생활의 뿌리에 있어서 특수하고 구분이 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로 한다.

 

II. 출발점

 

   신학적으로 모색할 때 어디서 시작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메리 마허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므로 나의 논지는 이중의 확인으로 시작된다. 먼저 사도적 수도생활이란 공동체와 사명을 통해 살아내는 종신 서원으로 표현되고 효력을 발하는 생활로, 수도자가 평생에 걸쳐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철저한 삶이자, 창설자의 카리스마를 포함하여 그 카리스마가 탄생하고 실현되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고유하게 형성되는 생활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1세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수도생활을 계속유지되도록 결정하기도 했고 같은 기간 동안 생겨난 다양한 형태의 생활 가운데 그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근본적 구성(조직)과 역사적 발전 사이의 이러한 상호 작용으로 말미암아 피상적으로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카리스마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수도생활 형태가 나타났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의 상호 영향을 놓치면, 그 중 하나가 그러한 생활뿐 아니라 생활 형태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등장하게 되고 그 결과 비 역사적 본질주의가 되거나 뿌리 없는 실존주의가 된다.

 

이런 문제의 구체적인 예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제 기능을 못하는 혼합 형태의 수도생활이다. 즉 여자 수도회들 중에는 창설자가 의도한 생활은 비 봉쇄의 사도적 수도회[1]가 분명했음에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도회 역사 대부분을 수도원 형태를 기본으로 한 수도생활로 제한해 온 수도회들이다. 그러한 사도적 수도회가 1900[2]에 교회법에 따라 수도회로 승인되었고, 20세기 교황과 신학자들[3]에 의해서 그리고 마침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서 온전히 사도적 성격을 지니도록 촉구되었지만, 그들 수도회의 온전한 사도적 특성 주장이 수도회들 사이에[4] 또 쇄신하는 수도회와 교계 제도상의 일부 요소 사이에[5] 상당한 긴장을 야기해왔고 또 계속 야기하고 있다.



[1] 그런 수도회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안젤라 메리치(1474-1540)가 창설한 우르술라 회, 메리 워드(1585-1645)가 창설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수녀회(IBVM), 루디즈 드 마리약(1591-1660)가 창설한 사랑의 딸 회, Marguerite Bourgeoys(1620-1700)가 창설한 CND(노틀담 수녀회), Nano Nagle(1718-1784)가 창설항 PBVM(복되신 동정 마리아 봉헌 수녀회), 캐더린 매컬리(1778-1841)가 창설한 자비회, 메리 매킬롭(1842-1909)가 창설한 요셉 수녀회 등이다. 이들 창설자 중 어느 누구도 설립한 수녀회가 봉쇄 수도원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우르술라 회와 같은 일부 수녀회는 실제로 완전히 봉쇄 수녀회가 되었다. 사랑의 딸 회와 같은 수녀회는 비 봉쇄로 남기 위해 수도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였다. 기타 대부분의 수녀회는 적어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나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반 봉쇄의 상태로 수녀회 역사 대부분을 보내왔다.

[2] 1900년 교황 레오 13세는 “Conditae a Christo”를 선포하여 사도직에 헌신하는 회를 수도회로 공식 인정하였다.  

[3] 교황 비오 11세는1950년과 1952년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자 수도자들에게 사도적 정체성을 수용하고 이에 따른 생활 양식도 조정하도록 장려하였다. 사도적 수도생활 쇄신을 위해 교황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을 간략하게 설명한 내용을 보려면, 로라 앤 퀴뇨네스(Lora Ann Quinonez)와 메리 대니얼 터너(Mary Daniel Turner)가 쓴 The Transformation of American Catholic Sisters 미국 가톨릭 수녀들의 변모 (Phi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92) 11-12 참조한다. 레온 조셉 수에넨스(Leon Joseph Suenens)는 획기적인 저서 The Nun in the World: New Dimensions in the Modern Apostolate 세상의 수도자 현대 사도직의 새로운 차원들 (London: Burns & Oates, 1962)를 통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유래될 법한 발전의 성격을 제시하였다.

[4] 미국 내 전통적인 여자 수도자 장상 연합회(CMSWR)와 진보적인 여자 수도자 리더십 회의(LCWR) 사이의 긴장은 사실상 교황청에 의해 장려되고 부추겨져 왔다.

[5]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내 사도적 여자 수도회에 대한 바티칸의 사도좌 방문은 여자 수도자들의 사도적 참여를 일부에서 세속적이라고 염려하는 전통주의적 수도자와 바티칸 공직자들에 의해 촉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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