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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14 08:57
2019 사순/부활 편지 - 총장 마리아 페스트 수녀
 글쓴이 : krosa
조회 : 103  

 

2019년 사순 / 부활


수녀님들과 협력회원들께,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저는 교회 전례력에 있는 참회의 두 시기를 묵상해 봅니다.  대림시기는 (미국의 경우)“여러 명절이 있는 휴가철중에 보내기 때문에, 대림시기가 의미하는 참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그에 반해 사순시기는 참회의 시기로 인식하기가 휠씬 쉬워 보입니다. 디아무드 오무크는Incarnation:  ANew Revolutionary Threshold 육화-새로운 진화의 문턱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두 시기를비교하여 설명합니다. 그는 성탄이 그리스도교에서 기념하는 모든축일 가운데 가장 큰 축일이라고 말하면서, 구원과 구속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행위에 속하기보다는 무엇보다도우선 태초의 탄생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부활은 골고타 보다는 베들레헴과 공통점이 더 많다고 합니다.예수님의 탄생이 여성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나자렛의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부활 또한 또 다른 여성의 원형인 막달레나를 통해 제대로 전해집니다. 여기서 육화의 이치는돌고 도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지인 베들레헴 동굴과 또 다른 동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빈 무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육화가 주는 권능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뿜어냅니다. 대림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의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이 천년 전 그분의 오심을 기념합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부활에 중점을 두며 준비하되, 이는 부활 사건에서 보여주는 희망과 새 생명을맞이하도록 우리를 준비시켜주는 수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셨을때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헤아리고자 하는 와중에, 때로는 그분이 인간의 몸을 취한 이유에 대해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우리의모든 병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셨던 것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이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던 것일까요?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관련된 엄청난 역설, 즉 탄생-죽음-재탄생 혹은 생명-죽음-새 생명이 순환하면서 이루어지는 엄청난 역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분명한 점은,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피조물은 모두 죽음 없이 지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을 한계나 벌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죽음은 필연적인선, 즉 모든 형태의 생명이 자라고 번성하도록 하느님이 주신 명령이자, 계속 발전해나가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새롭게 진화해가는 가능성들을 위한 촉매제로서기여하는 죽음과 밀접하게 얽혀있습니다. 역사 상의 예수님을 보면, 하느님나라로 알려진 복음의 역동 속에서 이 두 차원이 서로 얽혀있음을 보게 됩니다. 새로운 하느님 나라에서의 변모란무의미한 고통과 죽음의 종말, 인류의 타락으로 깨어지고 부서진 모든 것의 치유를 뜻합니다. 육화는 생명의 충만함, 즉 새로운 진전과 가능성을 끊임 없이 활발하게 해주시는 성령께서 우리를매혹하여 일깨우는 가운데, 미래로부터 항상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는 점진적으로 진화해가는 열망입니다. 


오무크는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예수님이 그만 둔 지점에서 이어 가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분은죽는 법이 아니라 사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죽음을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유대교 제국주의자들에게 죽임을당했고,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폭도들에게 내리는 사형선고인 십자가형이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육화의 사명은 무의미한 고통을 끝내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성경전체에 걸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추구하셨던 일이자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를 따르는제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사명을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살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사순시기 실천의 세 기둥이라 할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살펴보면서, 2019년 사순시기를 잘 지킬수 있도록 어떻게 초대 받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기도 와 공동기도를 통해,안전한 장소를 벗어나 불편한 곳으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가 결코 선택하지 않을법한 여러 길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은 겸손과 정의와 평화를실천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길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올 해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이웃 사랑이라는 두 번째 큰계명과 이 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를 새롭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면,이 사순 시기에 단식과 자선을 통해 우리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사순 시기에 단식과 자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 기꺼이 무엇을 희생할까에관해 이야기 했습니다. 라틴어로 희생이 의미하는 바는, 예로부터 알고있듯이 단지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속죄론에서처럼 어떤 것을 거룩하게하는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그래도 희생이 좀 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힘을 실어주는 사랑의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면 결국은 타인에게 선물하는 셈입니다.타인 혹은 타인들의 유익을 위해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확실히 이러한 포기는 단식과 자선이라는 범주 중 하나에 해당하거나혹은 둘 다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건강에 좋은 단식에는 정크푸드(부실식품)”를 끊는 것이 포함될 수 있겠지만, 불안,불평, 불만, 건전치 못한 분노,다름에서 오는 두려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 등을 멈춤으로써 거룩하게 단식하는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자선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가진 빈약한재정 자원으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 외에, 우리의 사명을 위해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하면 공동체가 지지하는 가운데 활용할 수 있는지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자선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여기는 자원 중 하나인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요? 지금 세계공동체에서 가장 도움이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사순시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를 상기하는 방법으로 두 번째 섭리기도문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주님 저희는 주님의 섭리를 드높이며,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주님, 저희가받은 은사와 지구에 대해 책임 있는 청지기로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시대의 악과 불의에 용감히 직면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하느님 백성의 기쁨과 고통에 온 마음으로 동참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고자 애쓰는 선의의 이웃들과희망차게 협력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아멘. 


수녀님들과 우리 국제 수도회에 소속된 협력회원 여러분, 우리가 함께 기도를 바치며 오늘날 국제 사회에 필요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단식과 자선의 새로운 방식을 찾으면서 서로를 지지해 줍시다.


저와 더불어 메리 프랜시스 수녀님, 로사 수녀님, 그리고 리베라타 수녀님이 함께 은총 가득한 사순/부활시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찬 섭리 안에 하나되어,

총장 마리아 페스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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