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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10 20:08
[수녀님 글] 편지 글 - 마리 드 라 로쉬 수녀님께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10,015  

마리 드 라 로쉬 수녀님께   

 
글쓴이: 주 영숙 데레사 수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여기에 현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지금 이곳에서 먼 과거에 현존해 있었을 하지만 지금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수녀님을 부르는 것이 제게는 참으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이 기분에 묘한 설렘이 있기에 오늘 수녀님을 글로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존경하올 마리 드 라 로쉬 수녀님~!
지금 당신이 저를 만났다면 참으로 나와는 다른 자매구나.. 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우아한 인품과 부드러운 성격과는 달리 전 끊어버릴 듯한 말씨와 조금은 쌀쌀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당신의 확고부동한 소신 있는 눈으로 저를 찬찬히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같은 부분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전 마음 따스하고 내성적이거든요... 수녀님처럼...

전 당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참 부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탁월한 언어 재능을 타고나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이어에도
능통하셨다고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분명히 한국어도 배우셔서 잘 쓰셨을 테지요. 하느님께서는 수녀님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신 만큼 당신을 통해 하시고자 한 것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겸손한 마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충분히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셨습니다.

1851년 9월 20일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에 출범한 우리 수도공동체에 든든한 초석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모든 것들에 한번도 후회함 없이 오직 당신을 온통 하느님의 것으로 내어놓으신 당신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저의 삶을 반성해 보기도 합니다.
케틀러 주교님과의 만남 그리고 주교님이 시작하신 공동체에 대한 말씀과 당신이 그 공동체가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고 기꺼이 받아드리시겠다고 한 그 순간부터 주교에 의향에 따라 명성, 자존심, 재산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새 공동체 창설과 발전을 위하여 다 바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그 응답이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큰 의미를 부여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 해 하고 무엇인가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것들을 주님의 사랑에 의탁한 채 당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기꺼이 응답하는 모습 안에서 매번 망설이고 주저하는 지금의 저희들이 당신의 마음을 닮아 주님께서 쓰시겠다면 기꺼이 대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러한 대답은 온전히 하느님께 나을 내어 맡길 때 가능한 것이겠지요.

당신은 이후 영성 지도 신부님과 케틀러 주교의 조언에 사도직에 종사하는 전통 있는 수도원에서 수련을 받으시며 앞으로 우리회가 든든하게 뻗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련을 마친 다음 1853년에 휜튼에 새 수도 공동체의 모원을 세웠지요.
당신이 수련을 받으며 보내신 케틀러 주교님께 보낸 편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당신이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수련하는데 열심이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불태울 수 있기를 고대하셨던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당신은 주님을 위한 사랑과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불굴의 용기를 주십사 끊임없이 기도하셨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당신께서 케틀러 주교님께 청하셨던 그 기도가 필요함을 말씀드립니다. 그 어느 시대에서든 우리가 바라고 가야할 길이 바로 그분이 걸어가셨던 그 길이니까요. 그리고 작은 것 하나까지 의논하시는 수녀님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겸손한 행위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수녀님의 나이에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기다리고 결정해 주시기를 간청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수녀님은 늘 혼자 결정하기 보다는 주교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론 인해 순명의 은총을 수녀님은 충분히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수련을 마치고 휜튼의 수녀원으로 오셨을 때의 그 모습을 그려봅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마리아 수녀가 휜튼에 도착하자 수녀들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자신들과 다른 신분을 가졌고 살아온 환경이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을 조금은 느꼈을 그곳의 수녀들이었지만 곧 당신의 겸허하고 소박한 모습에서 안도하였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덕행을 쌓는 것이 바로 수도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배움의 기회가 됨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 안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오해받고 갈등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치부해 버리는 것들도 역시 있습니다. 다른 것뿐인데 그것이 곧 잘못으로 규정되어 질 때 우리는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당신이 받으셨던 어려움은 곧 이러한 것들에 의해 일어났고 일련의 과정 안에서 당신은 참으로 고귀했던 당신의 성품처럼 모든 것들을 받아드렸습니다. 저는 아우쉬 신부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한 면을 바라봅니다.
이상을 향한 힘 있는 열정이 오히려 좋은 것을 놓쳐버리고 마는 경우 같았습니다. 하느님의 사업을 하면서 기다리고 그분의 안배하심에 온전히 신뢰하기 보다는 내가 계획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다른 이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도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는 잘못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또한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로인해 수녀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드셨으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도 신부님과 몇 명 자매들과의 갈등상황을 케틀러 주교님께서는 당신의 품성을 믿고 그곳 수녀원에서 떠나 헤른스하임의 분원장으로의 소임이동을 하셨습니다. 당신을 기꺼이 “ 예 ” 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당신이 헤른스하임으로 가는 날 주교님은 23세의 빈첸시아 수녀를 후임으로 공식 임명하셨고 23살이나 어린 젊은 총장을 모시게 되었지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우리들의 일에 나이가 그리 문제될 것은 없겠다고 하지만 아마도 이생에 살아가는 한은 그러한 것들에 의해 마음이 한번쯤은 흔들리고 자신을 그 것에 온전히 순명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뢰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자신을 바라다 볼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기꺼이 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꺼이 순명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새 총장수녀님께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첫 총장 수녀님이셨다는 것에 저는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그 겸손함과 온유함에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것이 바로 섭리의 딸이 가야하는 길임을 당신은 보여주셨습니다.

헤른스하임 에서의 1년은 수녀님에게 참으로 평화스러운 한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평화는 또 다른 하느님의 계획 속에 마련하신 쉼의 시간이었음을...
그 때의 독일 상황은 공업화가 시작되어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돈이 많아짐에 따라 더욱 그 돈을 따라 나서는 사람들의 증가와 더불어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로인해 고아들과 고아의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이 배고프게 지내게 되었지요.
이러한 상황에 하느님께서는 슬퍼 하셨을 테고 그들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 주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그 뜻을 알아들은 사람의 좋은 마음이 점 점 당신의 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좋은 마음이 있다하여도 뜻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빛이 빛나는 것. 많은 재산을 기부하여 고아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준 귀족을 상대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수녀님 당신이었다는 것은 또 다른 하느님의 섭리 이셨음을 봅니다.
당신이 헤른스하임에 부임하여 일년 동안 마을 사람들과 사귀고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당신나름 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소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당신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으니 당신은 적지 않게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노이슈타트의 고아원에 관한 서한에는 곧 고아원을 인수하게 되었고 몇 개월 후 개원할 수 있도록 몇 명의 수녀와 함께 그 고아원의 원장으로 임명한다는 주교님의 통보를 받고 참으로 어려우셨겠지요...하지만 당신은 ‘ 하느님의 뜻’에 힘을 얻는 분이셨기에 기꺼이 이 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당신은 장상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만이 당신의 유일한 의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셨습니다.
당신의 그 순명정신은 그 이후 많은 고아들에게 위로와 힘 그리고 당신의 따스한 사랑 속에 생활할 수 있었으니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는 우리들의 순명이 나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리처럼 많은 이들의 선과 사랑으로 이끌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알아듣기 힘들지만 매 순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나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나의 일에 충실할 때 나 뿐 아니라 나의 공동체 더 나아가 당신의 나라의 모든 이들에게 한 점으로나마 사랑을 나눌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꺼이 지금을 봉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녀님~~! 지금 제가 저의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인해 제가 어떻게 매순간 순명하며 지내야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예민함과 용기를 주시기를 우리 주 천주께 전구해 주시겠어요? 당신은 분명 주님 곁에 머물고 계시기에... 전구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들어 주실 거죠? ^^** 그리고 전 당신이 고아들을 위한 사도직을 시작하기 위해 몇 명 수녀들과 노이슈타트로 떠나실 채비를 하실 때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면 저도 함께 떠나겠다고 짐을 꾸렸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도직이 있다면 새로이 계획하고 있다면 기꺼이 그 사도직을 위해 떠나고 싶습니다. 저의 바람이 헛되지 않다면 언젠가 우리 한국공동체에서도 버려지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함께 해 줄 수 있는 그러므로 해서 아이들이 사랑을 먹고 잘 자라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녀님이 활동하시던 그 당시의 독일 상황과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도 아이들은 혼자 남게 되고 또 혼자처럼 버려지는 청소년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당신은 성녀 데레사의 말씀을 묵상하며 매순간을 순명하셨습니다.
“ 주님,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필요한 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
1856년 8월 24일 고아원은 축성되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간 3명의 수녀들과 함께 그 많은 일들을 해 내셨고 그로인해 고아원은 개원하는 날에 3명의 아이들이 입소를 하였으니 참으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일을 시작 한 것입니다.
수녀님!
이렇게 수녀님께 글을 쓰다보니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신을 통해 배울 수 있음을 봅니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당신이지만 시대와 환경은 달랐어도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자세는 언제나 똑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나 해야 할 것들이 바로 당신이 겪으셨던 그것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볼 때 마다 당신이 헤쳐 나아갔던 그 방법으로 우리들도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야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보내신 케틀러 주교님께 보낸 서한이나 빈센시아 원장 수녀님께 보낸 서한을 읽어보며 얼마나 당신이 솔직하고 겸손한 분이신지 볼 수 있습니다.
작은것도 나눌 줄 알고 의논해가며 공동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심하는 모습과 필요한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청하시는 모습 안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 모든 상황이 어려우셨을 텐데 그 모든 것 안에서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고 그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누시려하는 모습이 진정 당신이 추구하셨던 봉사의 삶이 우리에게는 큰 귀감이 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당신의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귀하고 빛나는 것이었음을 ... 감사합니다.
전 당신이 받으셨던 수모들에 대해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왜? ”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당신처럼 겸손하고 자신을 내어놓으며 열심히 생활하셨던 수녀님에게 왜 그 주방수녀는 수녀님을 떼밀어 버리는 행동을 했을까요? 무엇이 그 수녀의 마음 안에 그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화를 만들었을까요? 그 수녀님의 성향이었을 것이기도 하지만 그 행동 저변에 있는 사람에게 대한 질투심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마음 안에 질투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내가 행하지 못함에 대한 내 스스로를 향한 ‘화’ 일수도 있겠고요. 저는 그렇습니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질투심이 생길 때 전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결국은 내가 성장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말로 인해 또다시 제 마음 안에 상처를 내며 가슴아파합니다.
아마도 당신을 밀어버린 수녀님의 마음도 저 같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당신은 그 수녀를 용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당신은 그 마음을 읽으셨을 테니까요... 이후 그 수녀님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장티푸스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으니까요.
수녀님!
당신이 병상에서 보여주셨던 행동들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수녀님을 간호하셨던 베네딕다 수녀님은 수녀님이야 말로 세상의 그 누구보다 참을성 있고 자신을 온전히 이웃에게 내어 준 사람이었다. 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당신은 장티푸스의 그 열병과 함께 유방암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알 수 있었습니다. 힘든 몸을 이끌고 그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몸 바치신 당신의 그 헌신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 당신은 열병의 병마가 휩쓸고 간 성 마리아 고아원의 유일한 희생자가 된 것은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컸음일까요? 당신은 45년 동안의 이승의 삶에서 기꺼이 벗어나 천상으로 향해 달려가셨습니다. 짧은 수도 생활을 하였지만 당신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기에 완덕의 긴 여정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 지상에 머무르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이지요. 그래요 하느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당신을 천상으로 불러주셨던 것입니다.
수녀님!
지금 당신은 천상에서 저희들을 지켜보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후배들이 세상 여러 곳에서 당신의 꿈의 실현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보시면서
늘 저희들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갖출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 ’ 이 당신의 꿈이었으니까요.
그리스도께 인도하기위해 저의 삶의 어떠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신의 일생을 통해 보여 주고 계십니다.

수녀님 ! 사랑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속삭여주는 말씀으로 오늘도 힘을 얻고 정진합니다.
“ 데레사 직무가 무겁게 생각될 때 가슴에 차고 있는 십자가를 보아요. 이 십자가가 데레사의 힘과 격려의 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 평화와 침묵의 천사들이 됩시다.”
늘 저희와 함께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07년을 보내며 한국의 왕림 골에서
                수녀님의 후배 주 데레사 수녀가 드립니다.

출처: 2008 섭리 영성 연구 '창설자의 정신을 따라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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