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묵상: 과학이 들려주는 이야기
과학이 들려주는 기원 이야기
이정규**
1920년대 외부 은하들을 관측하던 에드윈 허블은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현재 우리 우주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하는 빅뱅 이론이 등장하게 된 획기적인 관측이었다. 이제 우리는 우주가 138억 살이며, 계속해서 팽창하고, 그 팽창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현대과학은 답을 하지 못한다. 우주 전체에서 작용하는 중력과 아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결합하여야 하는 이 한 점의 물리상태를 기술하는 법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가 생겨난 그 순간, 절대온도 1027도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장 안에서 작고 단순한 입자들이 만들어진다. 제일 먼저 만들어진 가장 간단한 입자 중 하나가 쿼크다. 여섯 가지 종류의 쿼크 중 두 가지만이 물질의 구성에 관여하는데, 이들은 곧 결합하여 조금 더 복잡하고 새로운 입자, 곧 중성자와 양성자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새로운 입자의 등장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쿼크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쿼크가 한 종류밖에 없었다면 이들이 두 개씩, 세 개씩 결합하더라도 그냥 덩치만 커질 뿐이지 새로운 입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다른 쿼크 입자들의 결합으로 새로운 입자 ‘창발’했다. 창발은 창조적 발현의 줄임말로, 이전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진화의 과정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입자나 생명체가 물리적 환경의 변화나 내적 변화의 결과로 끊임없이 창발해온 과정이다.
쿼크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중성자와 양성자도 곧 결합하여 원자들을 만들어낸다. 최초에 만들어진 원소는 다섯 가지에 불과했다. 이 원소들이 모여 별을 만들고 또 은하를 만들었다. 최초의 별들은 이 다섯 가지 원소로만 구성되어 있었기에. 이들 주위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만들어 질 수 없었다. 지구와 같은 암석 행성이 만들어지려면 다양한 원소가 많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원소가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별이다.
헬륨과 탄소, 질소, 산소 같은 원소들은 우리 태양과 같은 작은 별에서도 만들어지지만, 그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큰 별에서만 만들어진다.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 덕분에 코발트에서 우라늄까지 다양한 원소가 만들어진다. 또 초신성 폭발로 인한 엄청난 충격파는 주변의 물질을 한쪽으로 밀어 다음 세대의 별들이 탄생할 수 있게 돕기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세대의 별들은 그 이전 세대의 별 안에서 또 별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원소로 더욱 풍성해진 터전에서 태어난다. 사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초신성에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소와 헬륨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초기 우주에서 별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지고, 초신성 폭발을 통해 성간물질이 점점 더 다양하고 풍성해지고, 다음 세대의 별이 태어나고... 그렇게 오랜 세월, 별의 탄생과 죽음이 계속된 끝에 46억 년 전 태양이라는 작은 별이 만들어졌을 때는 그 가까이에 암석형 행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별과 별 사이 공간에 있는 가스와 먼지가 모인 성간구름은 별들이 탄생하는 곳이다. 우리 태양도 이런 성간구름에서 생겨났다. 성간구름이 중력으로 뭉쳐지는 과정에 회전이 생기고 이 때문에 구름이 납작해져서 원반이 생겨난다. 이 원반에서 작은 입자들이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뭉쳐지는 과정을 거쳐 행성이 만들어진다. 초신성 폭발로 뭉쳐진 물질이 충돌로 뭉쳐진 원시 지구는 뜨거운 불덩어리였다. 이렇게 생겨난 불덩어리 지구가 식어가며 한참의 시간(약 10억년)이 지난 후 생명체가 등장한다.
물질에서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직 과학이 밝히지 못한 영역이다. 깊은 바닷속에서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생명은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며 35억 년 동안 진화를 계속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공통조상에서 여러 생명종(種)이 분화해 나온 것을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는 것으로 묘사한 ‘생명의 나무’를 보자. 그림에서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생겨난 모든 생명체는 세균, 고세균, 진핵 생물로 나뉜다. 인간은 650만 년 전 침팬지와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고, 진핵 생물군이라는 큰 줄기의 한 나뭇가지 끝자락에 자리한다. 인간이 진화해온 경로를 최초의 공통조상에서부터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리가 진화의 최첨단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각각의 가지 끝에는 현재 지구상의 종들이 자리한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서 생명의 그물망을 이루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진화경로에서 최첨단에 서 있다.
현대 과학이 들려주는 기원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가 우주에서 생겨나왔다고 들려준다. 우리 몸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물은 수소와 산소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 진화사에서 수소가 만들어진 때는 딱 한 번, 138억 년 전 우주가 생겨난 직후뿐이다. 산소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은 별 안이 유일하다. 우리의 몸은 지구 자전 주기에 맞는 생체 시계를 갖고 있고, 우리의 눈은 먼 옛날 빛에 반응하여 광합성을 이뤄낸 단세포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 몸 안에 138억 년에 걸친 우주 진화의 여정이 담겨 있다. 우주(宇宙)는 말 그대로 우리가 사는 가장 큰 집일 뿐 아니라, 우리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하나의 근원에서 생겨나 모두 연결된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현대의 기원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가? 특히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처한 지금에 말이다.
** 노원우주학교 관장. 호주에서 천문학 공부했으며 현재는 우주를 통해 생태위기 해결에 도움이 될 새로운 세계관으로 제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살아있는 미로」, 「경이로움」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고 저서로 「우주 산책」이 있다.
** 이 글은 '가톨릭 평론 2019년 1,2월호에서 실린 글입니다.
출처: 천주섭리 수녀회 다음카페 게시판에서.
2019.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