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수녀회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필립 2,5)
(필립 2,5)
초대원장
천주섭리수녀회의 공동창설자인 드 라 로쉬 폰 슈타르켄펠스 폰 볼테는 1812년 10월 28일 하이델베르크 근처 비플링엔에서 출생했다.
드 라 로쉬는 프랑스의 정통 개신교 위그노파 가문으로 가톨릭 왕 루이 14세 치하 때 박해를 피해 독일로 이주했다. 드 라 로쉬는 비플링엔에 소재한 루터교 교회에서 슈테파니 프리데리 아말리에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언어에 능통하고 많은 책을 탐독하면서 종교는 루터교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거룩하다는 결론을 내린 드 라 로쉬는 1851년 6월 16일 39세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후 드 라 로쉬는 케틀러 주교를 만나 수도회를 창설했고 40세에 수련을 시작했다.
케틀러 주교로부터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852년 9월 8일 마리아 수녀는 수련기를 마치고 같은 해 11월 15일, 케틀러 주교로부터 수녀회 장상이자 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수련장도 겸하게 되었다. 이후 1854년 7월 10일 휜튼 성당에서 수도서원을 했다. 초대 원장 마리아 수녀는 침묵과 묵상을 사랑했고, 수녀들에게 ‘평화와 침묵의 천사가 되라’고 가르쳤다.
마리아 수녀는 1856년 노이슈타트에 새로 설립된 성 마리아 고아원 원장 소임을 받았다. 1857년, 노이슈타트에 장티푸스가 빠른 속도로 퍼져 수녀와 고아들까지 앓게 되었다.
활동이 가능한 사람은 마리아 원장 한 사람뿐이었으나 환자를 돌보던 중 장티푸스에 걸렸다.
마리아 수녀의 보살핌을 받은 수녀들과 고아들은 모두 회복되었으나 마리아 수녀는 하느님의 영원한 부르심을 받았다.
1857년 8월 1일, 45세를 일기로 수도생활 6년, 수도서원 3년이 되던 해 공동체의 첫 선종 회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