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환경의 날 담화문 (전문) - 주교회의 정의 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2014년 환경의 날 담화문 (전문)
죽음의 문화를 버리고 생명의 문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느님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묵시 21,3-4)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삼가 애도를 표하며, 하느님께서 유가족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은총이 함께 하길 빌며, 그들의 아픈 상처를 낫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돈에 휩싸여 왔습니다. 22조 원의 국가재정을 낭비한 4대강 사업과 그 폐해로 인한 분쟁, 핵발전소 확대 정책으로 인한 지역과 대도시의 대립, 특히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건설과 관련한 지역민의 고통 등 크고 작은 국책 사업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하였던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고통의 밑바탕에는 물질을 삶의 중심에 두는 ‘배금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배금주의는 우리 시대의 우상숭배이며,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문화입니다.
이미 지난 2010년 주교회의 춘계총회를 마치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우리 사회의 반생명적인 문화를 지적하였습니다. 주교회의는 4대강 사업이 우리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과 그곳에 기대어 사는 이들이 겪게 될 위험한 상황에 대한 염려를 표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조차 실시하지 않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4대강 사업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주교회의가 우려했던 바와 같이 우리 산과 강은 되돌리기 힘들 정도의 환경파괴와 함께 치명적인 오염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2013년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4대강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일부 재벌기업들의 부를 챙겨준 잘못되고 실패한 사업임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해에서 일어난 진도 9의 강진에 이은 쓰나미로 후쿠시마 현을 중심으로 일본 열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쓰나미보다 더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는 다름 아닌 후쿠시마 해안에 있던 4기의 핵발전소 폭발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후쿠시마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의 거의 모든 지역이 광범위하게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벌어진 이 핵발전소 사고는 3년이 지나면서 이미 망각의 늪에 빠진 듯합니다. 우리 정부는 에너지 ‘수요 관리’가 아닌 ‘공급 위주’의 전력정책에 따라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등 이미 수명이 다한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강행하며,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장기 계획인 2차 에너지 기본계획과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에너지 전망이 서로 맞지 않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전력수요의 확대를 예상하며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핵발전소 확대 정책은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부담과 위험인자를 남겨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핵발전소 확대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핵발전소의 비중을 줄여 결국은 ‘탈핵사회’로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하느님 창조 세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친환경적인 에너지 시스템 정책을 지원하고 보급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핵발전소와 같이 생태계와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발전 시설은 도시, 특히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이에 따라 대도시 송전을 위한 송전탑 문제가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밀양’과 ‘청도’입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송전탑이 지나는 곳에 사는 지역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이 파괴되고, 갖가지 질병에 노출되며, 재산권이 침해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밀양의 경우 9년간 지속된 송전탑 반대운동으로 많은 지역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은 경제적인 문제와 ‘전원개발촉진법(電源開發促進法)’이라는 비민주적인 법의 잣대로 가난한 촌로들의 생존과 인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의 ‘전원개발촉진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법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당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생을 강제하는 독소조항이 가득한 배금주의의 결과물입니다. 부와 번영을 위해서 힘없는 이웃들의 것을 빼앗아도 된다는 생각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령, 정책은 우리 교회가 가르치는 공동선(公同善) 원칙에 위배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전원개발촉진법’은 한시라도 빨리 개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생명을 경시하고 자본을 우선시하는 배금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세월호 참사’와 ‘4대강 사업’과 같이 고귀한 생명이 죽어가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생명을 경시하고 사회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 사회의 어두운 문화를 걷어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잘 가꾸고 보전하여 다시 오실 주님께 되돌려 드리는 착한 청지기의 사명을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잘못된 죽음의 가치관과 정책은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생명’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배금주의가 만들어낸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다하는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인 신앙인들과 착한 이웃들을 통해, 죽음의 고통 속에 있는 뭇 생명들과 가난한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 자녀들이 세상 속에서 복음적 결단으로 행동할 때가 ‘지금’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생명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악을 거부하고 행동하는 하느님 자녀들로 살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선의의 모든 이들과 친히 함께 계시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묵시 21,3-4).
2014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201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