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운동가가 본 강우일 주교]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자료: 한겨례 뉴스 2014-2-21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강우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 지난해 9월3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열린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출범 2주년 생명평화미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서귀포/뉴시스[토요판] 커버스토리 / 인권운동가가 본 강우일 주교
인권운동을 하며 고 김수환 추기경을 여러 차례 만났다. 김 추기경은 도무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양심수 석방이든, 탈북자 구명이든 당신을 필요로 하면,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다. 지난 16일은 김 추기경의 선종 5주년이었다. 그분의 빈자리가 아쉽다.
종북몰이라는 이름의 이념공세와 인권 탄압이 심해지고,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무참히 짓밟힐 때, 강우일 주교는 우리 옆에 있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빈 자리였다.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던 21년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묵묵히 김 추기경의 곁을 지켰던 강우일 주교는 2002년 제주교구장으로 임명받은 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었다. 제주는 국가범죄의 전형인 4·3사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군사기지를 짓겠다는 국가를 강 주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다들 체념하며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발 빠르고 단호하게, 그리고 꾸준히 대응했다. 현실 싸움에서의 형세는 많이 기울었을지 모르지만, 강우일 주교의 노력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근본적 성찰에 닿았다.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던 21년 동안 묵묵히 곁을 지키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비판뒤 자신의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시국미사를 주도하는 사제들의 배후에는 강우일 주교가 있고 강 주교 뒤엔 프란치스코 교황, 또 그 뒤엔 예수가 있었다
강우일 주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얼굴이다. 천주교회의 사회참여를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일종의 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강 주교의 발언은 곧 한국 천주교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된다.
강 주교는 천주교 성직자들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하는 걸 보고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정부가 근본적으로 잘못을 시인해야 풀린다고도 했다. 어찌 보면 천주교회 ‘참여파’의 든든한 배후일 수 있다. 예전에 박홍 신부가 했던 식으로 따지면 이렇다. 시국미사를 주도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배후에는 강우일 주교가, 강 주교의 배후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 그 뒤엔 예수가 있다.
강우일 주교의 말과 행동은 강정마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해선 ‘도둑질’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핵발전소 건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왜 대도시의 잘사는 사람들을 위해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냐며, 핵발전소가 윤리적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을 공부하면서, 이 협정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구제역 사태 때는, 살처분되는 짐승들의 울부짖음을 떠올리며, 인간이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는다지만, 먹는 것도 인간답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 정권을 겨냥해 “수백만 백성이 배를 곯고 있는데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핵무기를 실험하며 허공에 돈을 뿌리는 어리석은 무리”라고 규탄한다. 이런 규탄은 “40배나 많은 재산을 벌어 하늘에 닿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살 뺄 걱정들만 하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형제를 업신여기고 손 내미는 아우 앞에 매정하게 문고리를 닫아걸고 등을 돌리는” 우리 자신도 비켜가지 않는다.
지난 5일 서울대교구 주교 서품식 축하식에서 강우일 주교는 문득 “조폭과 신부의 공통점을 아느냐”고 신자들에게 물었다. 사실 이건 천주교회에서 오래된 유머다.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자기 지갑을 열어 돈을 내는 법이 없다 △서열이 확실하다 △남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는다 △조직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등이다. 강 주교는 “여기까지는 아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도 아느냐”고 물었다. “어디에 나타나든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다가서지 않는다”는 게 답이란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지만, 정작 하고픈 말은 그다음이었다. “교회가 2000년을 살면서 유연성이 떨어지고, 고집이 세지고, 초대교회와 많이 달라졌다. 특히 로마제국과 공생관계를 맺으면서, 교회 안에 세속적 속성과 관행이 많이 덧칠되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주교, 사제 등의 위계질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강 주교는 이날 서품을 받은 유경촌, 정순택 주교에게 “교회와 세상이 막연히 품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의심”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주교란 권위를 앞세우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정화하고 속죄하며, 실천하는 자리라는 설명이었다.
강우일 주교는 온화한 성품과 달리 결코 할 말을 피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강 주교는 단호하면서도 모나지 않고, 옳은 길을 가면서도 독선적이지 않다. 늘 눈을 들어 보려 하고,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건 아예 말하지 않는다.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다. 그러니 말에 힘이 있다. 이런 게 바로 카리스마다. 이런 분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특히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201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