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용산에서 - 홍세화 칼럼
출처: 한겨레 신문 홈 http://www.hani.co.kr/arti/SERIES/114/378165.html또 용산인가. 아니, 아직 용산이며, 기어이 그날이 올 때까지 계속 용산이어야 한다. 왜 나는, 우리는 용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벗어날 수 없는가.
매일 저녁 7시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열린다.(일요일 제외, 목요일엔 개신교 예배) 참석자가 많지 않아서일까, 오랜만에 찾은 남일당 골목길을 휘감으며 다가오는 저녁바람이 스산했다. 현장을 지켜온 문정현 신부님이 일갈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객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이 자리에 동참한다면 용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런데 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지면에 용산을 말하는 지식인, 문화예술인, 언론인은 많은데 정작 용산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용산을 다만 말할 뿐 찾지 않는 것은 누군가 말했듯이 불편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사람이 편함을 추구하지만 사람다움은 항용 불편함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스스로 편하겠다고 잠시 사람다움에서 벗어날지언정 사람다움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기에 사람 아니던가. 신앙이 없거나 달라서 미사나 목회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쉬운 핑계일 뿐이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을까? 나부터 이웃의 고통과 불행에 동참하기보다 이런 사태를 낳는 사회를 논하는 데 익숙해진 게 아닐까. 나는 과연 용산의 처절한 상처를 직시하고 달래기보다 용산을 말하면서 상처받은 내 양심을 달래는 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웃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마음보다 분노심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이상림 ‘한강갈비’ 사장님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1월18일 철거민 대책위원장인 아들과 함께 남일당 망루에 올랐다. 그러자 71살의 할아버지도 곧바로 ‘도심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었고 망루에 오른 지 채 하루나 지났을까,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 도중 불에 타 숨졌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8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책임지는 자 없고 사과하는 자 없다. 검찰은 재판과 관계없는 내용이라며 3000쪽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고 전제(專制)라고 부르며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럼에도 유가족을 피고석에 세운 재판은 진행중이다.
이명박 정권의 쓰나미가 덮치고 있는 것은 4대강만이 아니다. 노동, 교육, 인권, 언론, 복지, 시민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불관용의 칼날이 춤추고 있다. 자기 편이 아니면 모두 극복 대상이다. 체포, 구속하고, 파면, 해임하고, 추적, 소송하고, 감시, 사찰한다. 심지어 불온과는 거리가 먼, 창조적 실천가인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까지 그 표적이 될 정도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어렵사리 구축한 민주주의의 교두보들이 무너지고 있으니 자기 부문을 지키거나 수습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이다. 용산을 찾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용산은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며, 우리가 반민주주의, 반인권에 맞서 싸워야 할 최전선이다. 이 선을 넘지 못하면 어느 부문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부가 사과할 때까지,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할 때까지, 참담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유가족의 한을 풀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용산을 말해야 하고, 용산을 말하기보다 용산을 찾아야 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입보다는 몸으로. 작년 촛불광장에서 만났던 우리가 용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작년에 이명박 정권을 고개 숙이게 한 것은 말이 아니라 촛불의 힘이었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2009.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