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死形制)를 사형하라!
* 사회 교정사목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가져 온 글입니다.
부담없이 무심히 읽어 넘길만한 내용의 기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와는 너무 판이해서 두려운 생각마저도 들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은 교정 사목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catholic-correction.co.kr/)을 방문해 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제도 폐지에 동참하시는 분들은, 현재 한국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서명운동에도 참여해 주시고 같은 생각을 가지신 주위 분들의 동참도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형제(死形制)를 사형하라!
# 어떤 죽음 :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로마 2, 5)
오전 9시 30분. “1157번, 교무과장 면회!”
교도관의 목소리와 함께 ‘철커덩’ 철문이 열렸다. 웃음 띤 얼굴로 면회실을 들어서던 성현(가명)은 순간 주춤했다. 평소 같지 않게 4명이나 되는 교도관이 대기하고 있는 걸 보자마자 온몸의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교도관 두 명이 성현의 양팔을 끼고 끌다시피 사형장으로 향한다.
“아냐, 아냐. 내가, 내가…. 이렇게…. 안 돼.” 들릴까말까 한 소리를 내뱉으며 발버둥 쳐보지만 사형장으로 난 흙길만 하릴없이 패일뿐이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입회관석에서 교도소장을 비롯해 검사, 의무관, 교화 담당 교도관, 신부 등 대여섯의 입회관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성현의 말을 들은 듯 만 듯 교도소장은 재소자 신분장을 펴들고 그의 이름부터 나이, 본적, 신체특징 등을 확인해 나갔다. 이어 집행문을 읽어 내려가자 성현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리기 시작했다. 집행문 낭독이 끝나자 검사가 재심청구가 기각됐음을 알렸다.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말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현은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최후의 발악을 한다.
“아니야, 아니야. 난 잘못한 게 없어.”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두 손과 무릎, 두 발이 포승줄에 묶인 그를 2평 남짓한 교수대로 끌고 가려한다.
“잠깐, 잠깐. 마지막으로 담배, 담배 한 대만 피게 해주세요.” 담배를 든 성현의 손이 얼굴 앞에서 사정없이 떨린다. 유보된 2분 남짓한 시간, 그의 눈은 이미 딴 세상을 바라보는 듯했다.
“집행.” 소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성현의 머리에 천이 씌워진다. 곧이어 그의 목에 밧줄이 걸렸다.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들이쉬려는 듯 얼굴을 가린 천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썩인다. 눈길을 주고받은 세 명의 교도관이 동시에 집행 단추를 누르자 땅울림과 같은 충격음이 형장 전체에 울려 퍼지며 발판이 빠졌다. 성현의 몸은 갑자기 나타난 구멍에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밧줄이 팽팽해짐과 동시에 숨이 막히는 소리,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끼익 끼익 줄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15분이 지나자 의무관이 아래로 내려가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멈춰선 심장 고동을 확인했다. 그의 몸은 그로부터 15분간 더 매달려 있었다.
# 또 다른 죽음 :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 43)
성근(가명)의 손에서는 묵주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서 있는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불안한 기색이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안타까워라도 하는 듯 성근을 바라보며 간혹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기도 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범이었지만 주위의 모두가 그의 마지막 걸음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혹시 하고 싶은 말 없어?” 이제 마지막 날숨만을 남겨놓은 상태. 그 숨마저 내뱉고 나면 하늘나라에 있을 것이다.
“여기 와서 죽게 돼 다행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을 알게 됐으니까요.”
눈길로 입회관과 사형집행관들을 둘러본 그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도 좋으신 주님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저로 인해 아파했을 모든 분들께 용서를 청합니다.”
“교도관님, 먼저 가있을게요.” 순박한 웃음을 지어보인 성근의 얼굴이 천에 가려지고 이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던 교도관 고중열(베네딕토)씨는 집행장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었다.
‘그래, 잘 가거라. 나중에 하느님 앞에서 꼭 다시 만나자.’
묵주를 꼭 쥔 채 매달린 성근을 보는 순간 고씨는 다시 한 번 휘청거렸다.
200명이 넘는 사형수를 떠나보낸 고씨가 숱한 아픔 속에서도 그들 곁을 떠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주님만이 이뤄내실 수 있을 법한 기적을 그들 가운데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들은 사형수들이 살기 위해 거짓 행세를 한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세상이 등돌린 흉악범이 아이처럼 깨끗해지는 기적을요.”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낳았다. 사형 집행에 입회했던 교도관과 입회관 몇이 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입을 모은다.
“회개한 그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 가 있을 것입니다”
서상덕 기자 sang@catholictimes.org
가톨릭신문 제2626호 2008년 12월 07일자 (주간발행:1927년4월1일 창간) [커버스토리]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2008.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