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수녀회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필립 2,5)
(필립 2,5)
“천주섭리수녀회는 마인츠의 주교이자 사회 정의의 기수인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틀러와 마리 드 라 로쉬 원장 수녀의 유산이다.
1851년 독일 휜튼에서 창설된 본 수도 공동체는 교육과 병자 및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시대의 요구에 응답했다.” – 회헌 1항 –
19세기 독일은 무신론이 대두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던 시대였다. 또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부녀자들뿐만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노동현장에 투입되었고, 노동을 할 수 없는 어린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었다.
케틀러 주교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에 직면하여, 올바른 신앙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의 시급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케틀러 주교는 도덕적으로 위험한 일들에 노출된 어린이들을 비참한 상황에서 구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흉년과 전염병의 창궐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며,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케틀러 주교는 마인츠교구를 순시하던 중, 교육과 간호에 종사하는 수녀회를 교구에 유치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수도생활에 뜻을 두고 있던 슈테파니를 만난 케틀러 주교는 그녀의 내적 성숙함과 타인에 대한 관심, 하느님의 뜻을 완수하려는 각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주교는 심중에 품고 있던 새로운 공동체 설립에 대해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고, 슈테파니는 그 제안에 동의했다. 또한 자신들의 삶을 하느님과 자선사업에 바치고자 하는 4명의 여성들이 모여,수녀회를 창설할 수 있었다. 이들은 휜튼에 집을 마련했다.
수도회 창설은 1851년 9월 29일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에 이루어졌다. 케틀러 주교는 새 수도공동체의 명칭을 ‘교육과 간호를 위한 천주섭리수녀회’라고 했다. 이 명칭을 정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케틀러 주교의 삶에서 체험한 가시적인 하느님 섭리의 행적들에 대해서 감사를 표현한 의미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존경하는 선임 콜마 주교께서 소중하게 품고 있던 계획을 실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 명칭은 1932년 회헌 개정시에 ‘천주섭리 수녀회’로 변경되었다.
우리는 설립자인 주교 Ketteler와 Marie de la Roche로부터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의 카리스마를 물려받았다.
1964년 한국 성소자들이 천주섭리수녀회 총원(로마)에 입회를 하여 수련을 받았고, 1967년 첫서원을 하였다. 이 첫그룹 수녀들로 인해 천주섭리수녀회는 한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본 수녀회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회헌 2항, 1852년) 로 성령의 지도하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그 정신(필립 2,5)을 추구한다.
시대의 필요에 예리하게 만감하셨던 창설자가 지녔던 정신과 비젼에 충실하면서 교회의 기도와 가르침, 전교활동 등에 융합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파견 되신 그리스도의 사명을 함께 수행한다.
회원들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삶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도와 주고,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 의료, 선교, 사회복지, 필요한 영역에서의 사회봉사 등 우리의 봉사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이 되게끔 노력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신들의 인격적 품위와 가치를 보다 훌륭히 인식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회헌 1조)
설명 : 천주 섭리수녀회 수녀로서 우리가 행하는 사도직의 특징이 하느님의 섭리적 사랑에 대한 특별한 응답으로
결실을 맺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 안에서 얼마나 놀랍게 이루어 지는지를 말한다.
수도회 정신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정신으로(회헌2항, 1852년) 성령의 지도하에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고자 하며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힘쓴다.
이 정신안에서, 섭리의 하느님의 대한 증거를 우리의 봉사와 사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낸다. 회원들은 철저성과 인내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확장 시키고, 창설자 케틀러 주교의 삶을 특징지은 교회에 대한 충성, 사회적 관심 및 참여, 그리고 참되고 올바른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옹호를 반영 해 주고자 노력한다.
또한 초대원장 수녀였던 마리 수녀의 활동 생활과 결합되는 관상의 정신을 이어받아 겸손과 온유, 단순성의 모범을 통해 그분에게서 영적 힘을 얻으며 창설자 케틀러 주교와 초대원장 마리 수녀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회원들의 삶의 양식이다.
마인츠 주교좌 성당
독일 공동체를 마인츠 성마르틴 관구,
아샤펜부르크 성바오로 관구,
오버우슬 성보니파시오 관구로 분할 설립
미국 공동체가 성 베드로 관구(피츠버그)와 성 루이스 관구(성루이스)로 분리
빅토린 수녀 외 2명의 수녀 파견, 서울 정동에서 첫 공동체 시작
독일의 세 관구가 케틀러 관구로 통합
미국의 세 관구가 라 로쉬 관구로 통합
창설자 케틀러 주교 서거 125주년 기념
초대원장 마리 수녀 서거 145주년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