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빈정아 데레사 수녀님의 묵상과 이콘, 그림 소개와 더불어 성화를 감상하는 곳입니다.
성지주일(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
작성자
천주섭리수녀회
작성일
2009-04-05 11:21
조회
10042
입성(入城, 마태 21: 1-11; 마르 11: 1-11; 루가 19: 28-38, 요한 12: 12-19)
이 축제는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에 그 의미와 축제로 지내게 되었으며 서방교회에서는 7세기경부터 지내어 졌다한다. 그러나 이콘상으로는 4세기 중반부터 예수님을 나귀 위에, 바닥에는 옷을 펴 깔았으며 종려가지로서 흔들어 기쁨을 나타내는 기본형태로 그려지게 되었다.
성지 축제는 승리한 왕의 개선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
2. 구성과 상황
<산과 사도들>
실상 예루살렘 주위에 산은 있지만 그림에서처럼 높고 위엄을 갖추고 오르기 어려운 산은 없다. 이 산은 메시아의 의미를 띄고 있는 산이다. 즉, 시온 산으로, 그 산은 하느님이 사시는 산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님은 나귀에 걸터앉으시고 몸은 제자들을 향해 있는데 이 제자들은 이미 부름 밭은 새 민족, 즉, 예수를 믿고 그분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상징화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불림을 받아야 할 사람 쪽으로 머리를 두신다.
예루살렘성은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나와 있다. 그 성은 지상의 성이 아니라 천상의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그 문은 열려있지만 아직 어둠 속에 갇혀 있다. 그 문은 빛이 비치어 환해져야한다. 이제 빛이 들어가시면 그 어두움은 가실 것이다. 마중 나온 사람들은 아직 어둠 속에 헤매는 백성이며 빛을 향하여 나오는 이방인, 즉, 아직 예수께로 오지 못한 사람을 나타낸다.
종려가지와 예수
팔마(종려)가지는 하느님의 산과 사람사이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의 입성의 그림에서는 예수님만 성광을 그림으로서 그분만이 오직 거룩하심을 나타낸다. 그분의 자줏빛 옷은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며 신성을 의미한다. 거기에 푸른 만도는 조용함, 차분함 의미가 있으며 인성을(육화되심) 상징한다. 안쪽의 자주색은 신성이며 겉옷은 인성을 나타내니 그분은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즉, 신성을 인성으로 감추어 우리 곁에 계심을 의미한다. 그의 손에는 빚문서를 잡고 있는데 그분은 이로서(골로사이 2: 14) 우리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서 구원을 나타낸다.
어린이와 백성들
성지주일은 어린이 축제이다. 성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은 그러나 기쁜 표정을 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듯 어린이를 보이는가하면 침울한 표정이다.
그들은 난처한 처지에 빠져있어 필사적으로 혁명적인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성스러움과 명성을 종종 혼동하고 있다. 성스러움이란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상태이지만 명성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명성이 주는 빛 안에 흔들리고 만다. 그것은 흔히 무서운 폭도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환호의 물결이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가 이스라엘 왕국을 지상에 건설함으로서 예언이 성취될 것을 고대했지만 주님은 반대로 영성적인 구원을 통해 이스라엘의 적을 쳐 이기는 것을 의미했다.
예루살렘성
예수님은 빚문서를 손에 쥐시고 예루살렘의 성안으로 들어서려 하신다.
그 성은 앞으로 다가올 천국을 의미하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예루살렘의 성이다. 그러나 아직은 빛이 없는 상태여서 우리의 빛으로 오시는 그분이 들어가셔야만 빛으로 꽉 찰것이다.
우리는 입성 그림을 보며 단순히 성경에서 읽던 예수님의 수난의 역사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려한다. 그러나 이콘은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 분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
예수님이 들어 서시려하는 예루살렘의 성은 그 시대의 희생양만으로 들어서시는 성문이 하니라, 오늘날의 세계이며 작게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어린이들의 모습은 그분을 맞아들이기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마음을 청소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환영하고 맞아 들여야함을 보여준다.
그분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문을 활짝 열어야만 그분을 맞아 들일 수있고 빛을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축제는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에 그 의미와 축제로 지내게 되었으며 서방교회에서는 7세기경부터 지내어 졌다한다. 그러나 이콘상으로는 4세기 중반부터 예수님을 나귀 위에, 바닥에는 옷을 펴 깔았으며 종려가지로서 흔들어 기쁨을 나타내는 기본형태로 그려지게 되었다.
성지 축제는 승리한 왕의 개선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
2. 구성과 상황
<산과 사도들>
실상 예루살렘 주위에 산은 있지만 그림에서처럼 높고 위엄을 갖추고 오르기 어려운 산은 없다. 이 산은 메시아의 의미를 띄고 있는 산이다. 즉, 시온 산으로, 그 산은 하느님이 사시는 산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님은 나귀에 걸터앉으시고 몸은 제자들을 향해 있는데 이 제자들은 이미 부름 밭은 새 민족, 즉, 예수를 믿고 그분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상징화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불림을 받아야 할 사람 쪽으로 머리를 두신다.
예루살렘성은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나와 있다. 그 성은 지상의 성이 아니라 천상의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그 문은 열려있지만 아직 어둠 속에 갇혀 있다. 그 문은 빛이 비치어 환해져야한다. 이제 빛이 들어가시면 그 어두움은 가실 것이다. 마중 나온 사람들은 아직 어둠 속에 헤매는 백성이며 빛을 향하여 나오는 이방인, 즉, 아직 예수께로 오지 못한 사람을 나타낸다.
종려가지와 예수
팔마(종려)가지는 하느님의 산과 사람사이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의 입성의 그림에서는 예수님만 성광을 그림으로서 그분만이 오직 거룩하심을 나타낸다. 그분의 자줏빛 옷은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며 신성을 의미한다. 거기에 푸른 만도는 조용함, 차분함 의미가 있으며 인성을(육화되심) 상징한다. 안쪽의 자주색은 신성이며 겉옷은 인성을 나타내니 그분은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즉, 신성을 인성으로 감추어 우리 곁에 계심을 의미한다. 그의 손에는 빚문서를 잡고 있는데 그분은 이로서(골로사이 2: 14) 우리들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서 구원을 나타낸다.
어린이와 백성들
성지주일은 어린이 축제이다. 성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은 그러나 기쁜 표정을 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듯 어린이를 보이는가하면 침울한 표정이다.
그들은 난처한 처지에 빠져있어 필사적으로 혁명적인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성스러움과 명성을 종종 혼동하고 있다. 성스러움이란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상태이지만 명성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명성이 주는 빛 안에 흔들리고 만다. 그것은 흔히 무서운 폭도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환호의 물결이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가 이스라엘 왕국을 지상에 건설함으로서 예언이 성취될 것을 고대했지만 주님은 반대로 영성적인 구원을 통해 이스라엘의 적을 쳐 이기는 것을 의미했다.
예루살렘성
예수님은 빚문서를 손에 쥐시고 예루살렘의 성안으로 들어서려 하신다.
그 성은 앞으로 다가올 천국을 의미하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예루살렘의 성이다. 그러나 아직은 빛이 없는 상태여서 우리의 빛으로 오시는 그분이 들어가셔야만 빛으로 꽉 찰것이다.
우리는 입성 그림을 보며 단순히 성경에서 읽던 예수님의 수난의 역사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려한다. 그러나 이콘은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 분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
예수님이 들어 서시려하는 예루살렘의 성은 그 시대의 희생양만으로 들어서시는 성문이 하니라, 오늘날의 세계이며 작게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어린이들의 모습은 그분을 맞아들이기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마음을 청소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환영하고 맞아 들여야함을 보여준다.
그분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문을 활짝 열어야만 그분을 맞아 들일 수있고 빛을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